← 영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변하지 않을 것을 말하려다 변한 모든 것만 남은

많은게 변해버린 20년이 주는 추억과 감정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6년 개봉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1편으로부터 정확히 20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합니다. 베테랑 저널리스트로 자리 잡은 앤디는 큰 상을 받던 무대 위에서 자기 팀이 통째로 해고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자리에서 던진 발언으로 졸지에 유명세와 실업을 함께 얻습니다. 같은 시기 PR 위기에 몰린 런웨이의 미란다는 사태를 수습해 줄 인물을 찾던 끝에 다름 아닌 앤디를 새 에디터로 맞이하게 되고, 종이 잡지의 시대가 거의 저물고 모든 콘텐츠가 알고리즘과 클릭 수로 가늠되는 2026년의 사무실에서, 두 사람은 그렇게 20년 만에 다시 마주섭니다.

영화를 보고 가장 또렷하게 남은 인상은, 작품 자체보다도 그 안에 비치는 지난 20년 동안의 변화였습니다. 같은 산업,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인데도 2006년과 2026년은 거의 다른 행성처럼 보입니다. 영화는 그 간극을 추억으로 흐리지 않고, 시대의 변화를 정면으로 담아내려고 분명히 노력합니다.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미란다라는 존재의 무게입니다. 1편의 미란다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 권력이었고, 한마디로 사람을 일으키고 무너뜨릴 수 있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2026년의 미란다는 회의실에서조차 단어 하나하나를 고르며 눈치를 봅니다. 독설이 입에서 나오려는 순간 옆자리 비서가 “그 말은 위험합니다”라며 제동을 거는 장면은, PC와 MZ세대의 가치관이 리더십의 필수 조건이 된 지금, 과거의 카리스마 권력이 시스템적으로 해체되는 모습을 한 장면으로 압축합니다. 이건 말 한 마디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1편이라면 어시스턴트의 손에 맡겼을 일 — 사무실에서 옷을 손수 옷걸이에 거는 일까지 미란다가 직접 처리하는 모습은, 그녀를 떠받치고 있던 시스템 자체가 함께 얇아졌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단면이었습니다.

미란다 한 사람의 변화로 그치는 것도 아닙니다. 더 큰 변화는 인물들이 발 딛고 선 산업 자체에 와 있습니다. 트로피를 받던 손에 동시에 해고 문자가 도착하는 앤디의 그 시상식 장면은, 미국을 덮친 대규모 레이오프 열풍이라는 지금 시대의 정서를 한 장면으로 응축합니다. 그 위에 잡지 산업의 변화가 또 한 겹 깔립니다. 1편에서 그토록 신성하게 다뤄지던 종이 잡지는 이제 대부분 온라인 다운로드로 소비되고, 콘텐츠는 클릭 수와 지표로 먼저 평가받습니다. 깊이 있는 글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 영화의 배경 음악처럼 깔리는 셈입니다. 저는 이 풍경들이 1편을 보며 자란, 지금쯤 어딘가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느라 지쳐 있을 30·40대 관객에게 영화가 건네는 가장 직접적인 인사라고 느꼈습니다.

시대의 변화는 의상에서도 명확히 읽힙니다. 1편은 완벽하게 재단된 타이트한 실루엣으로 긴장감을 만들어냈습니다. 디테일이 화려한 옷과, 그 옷을 절도 있게 소화해 내는 인물들이 화면의 미학을 함께 받쳤습니다. 2026년의 화면은 그와 거의 정반대입니다. 루즈하고 편안한 핏이 주류이고, 색채는 모호한 중간 지점 없이 강렬한 원색이거나 감정을 덜어낸 무채색으로 양극화됩니다. 화려함보다 편안함이, 절제된 미감보다 개성의 극단화와 실용주의가 우위에 있는 지금의 라이프스타일을, 화면 한 장면이 그대로 보여주는 셈입니다.

미란다가 나이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장면, 그리고 에밀리와 앤디가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식사하는 장면은 1편의 거친 관계들을 현대의 PC적 감수성에 맞춰 뒤늦게 바로잡으려는 시도처럼 보였습니다.

두 장면이 작동하는 방식은 조금 다릅니다. 미란다의 사과가 1편에서 일방적이었던 권력관계를 인간적으로 누그러뜨리는 보정이라면, 에밀리와 앤디의 식사 장면은 1편에서 주연이었던 앤디와 그를 시기·질투하던 조연 에밀리라는 위계 자체를, 친구라는 동등한 자리로 끌어올려 다시 짜는 쪽에 가깝습니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둘 다 명확한 PC적 보정입니다. 그 의도는 이해되지만, 보정의 결과가 캐릭터의 결까지 적지 않게 깎아냈다는 인상도 함께 남았습니다.

가장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느낀 것은 앤디 쪽이었습니다. 시상식 무대에 오를 만큼 성공한 저널리스트가 된 앤디가 미란다 앞에서 다시 인턴처럼 긴장하며 잘 보이려 애쓰는 모습은, 캐릭터의 시간을 거꾸로 되감은 듯한 인상을 줍니다. 20년의 경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미란다와 같은 자리에 앉았을 때 가졌을 법한 자기 무게가 있을 텐데, 영화 속 앤디에게는 그 무게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두 사람이 동등한 자리에서 다시 만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이 속편이 짚어 보이고자 했던 시간의 흐름이 인물 안에서도 한층 선명히 살아났을 것입니다.

영화의 더 큰 약점은 아마도 지키려 했던 것의 정체가 끝까지 또렷해지지 않는다는 점일 것입니다. AI, 레이오프, PC, 관계의 회복 — 영화가 함께 담아내려 한 담론은 2시간 안에 정리되기에 분명 너무 많고, 흐름은 군데군데 파편화됩니다. 한 편의 영화보다는 한 시즌의 드라마였다면 좀 더 풍부하게 풀렸을 이야기들이 한정된 러닝타임 안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갑니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어떤 본질이 있다고, 영화는 분위기로는 계속 말하려 하지만, 그 본질이 무엇인지를 한 장면 안에 선명히 보여주는 데까지는 끝내 닿지 못합니다.

마지막 장면, 앤디가 셔룰리언 블루 스웨터를 입고 등장했을 때도 솔직히 말하면 비슷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1편에서 그 색은 미란다가 앤디를 처음으로 무너뜨렸던 굴욕의 상징이었고, 같은 색을 20년 뒤에 자기 것으로 입어낸다는 그림 자체가 가지는 무게는 분명 있습니다. 다만 그 장면이 인물의 도착점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기보다는, 1편을 기억하는 관객을 향한 팬서비스에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셔룰리언 블루를 다시 꺼내 들기에는 그동안 인물 안에 쌓였어야 할 어떤 무언가가 더 필요했는데, 그 무언가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자리에 옷만 먼저 도착한 듯한 어색함이 있었습니다.

영화관을 나서며 제게 가장 분명하게 남은 것은, 영화가 의도한 메시지보다 한 가지 자각이었습니다. 시간이 정말 많이 흘렀다는 것. 1편을 처음 보았을 때의 설렘과 신선함이 더는 똑같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배우들의 얼굴에 쌓인 시간만큼 저 자신도 자라 있었고, 그 사이에 세상도 함께 많이 변해 있었다는 것. 슬픔이라기엔 옅은, 그러나 분명히 슬픔에 가까운 감정이 잠시 따라왔습니다.

그러고 보면, 왜 이 속편이 하필 지금에서야 나왔는지도 어렴풋이 이해되는 듯합니다. 영화는 1편의 시절을 한 번 더 불러내는 동시에, 그때는 자연스러웠지만 지금의 감수성에는 더 이상 맞지 않는 부분들을 뒤늦게라도 매만져 두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더 늦어지기 전에, 우리가 1편을 다른 방식으로만 기억하게 되기 전에 한 번쯤은 이 풍경을 다시 그려두려 했던 것 — 그것이 이 영화가 굳이 지금이라는 시점에 도착한 이유가 아닐까, 그렇게 짐작해 봅니다.